영화창고2010. 6. 2. 21:51


영화는 한 편의 시였다. 그 결말마저 함축적으로 맺고, 따라서 그 결말에 대한 것은 영화 '시'를 읽는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도록 애초부터 의도된 것이지 아닐까 싶다.

천천히 산책하듯 영화를 보고나니, 시간은 어느새 두 시간을 훌쩍 넘겨 있었다. 시계를 보고야 시간의 공간성을 인지할 수 있었으니, 느리지만 지루하지 않은 산책이였던 게다. 그리고 기분 좋은 산책을 마치고 난 후, 따스한 햇볕과 바람 그리고 이들을 적당히 막아주고 흐르게 하는 나무들의 여운이 아쉽 듯, 이후의 잔향은 매우 짙고 그리운 것이기에 마음이 먹먹할 때면 청명한 풍경 좋은 산책로를 되찾듯 '시'도 언제든 다시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들 내겐 풍경 좋은 수작이었다.

서울 외곽의 소도시에서 이혼한 딸의 아들을 키우며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이어나가는 양미자 할머니. 그녀는 멋내기를 좋아하고 꽃을 좋아하며 소녀적 감성으로 재잘거린다. 그리고 그 감성을 억누르지 못해 시 쓰기를 할머니는 시작하려 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며 하여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양미자 할머니, 그러나 그녀에겐 전혀 아릅답지 못한 현실의 사건이 벌어지고 외면하고 싶지만 점점 그 중심에 서게 되고, 알츠하이머(치매) 초기 진단을 받게 되는데...

그녀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詩想은 역설적으로 아름답지는 못한. 때로는 추악할 수도 있을 현실의 순간에서, 그녀가 그 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혹은 망각했을 때 어깨가 저릿저릿 하듯 나타나곤 한다. 그 시상은 '스스로 몸을 던져 깨어지고 다음 생을 준비한다'는 살구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정점에 달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양미자 할머니는 깨닫지 않았나 싶다. 예쁜 것만 보는 것으로는, 그리고 단편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으로는 시가 될 수 없음을. 영화 속에서는 너무나도 무덤덤하게 그려지는 추악한 현실을 결국 즉시하였고 그 안에서 (그것이 슬픔이든 연민이든...)어떠한 미학을 발견해내지 않았을까.

처음, 아름다운 것에 대한 동경을 쓰고 싶었던  할머니는, 현실 속에서 현실을 맞대하며 그렇게 쓰고 싶어했으나 쓰기 어려워 했던 시 한 편을 완성해 낸다. 용서의 편지일지도, 혹은 할머니 스스로에게 보내는 희망의 편지일지도 모르는 '아네스의 노래'. 양미자 할머니의 시는 강물과 함께 천천히 긴 여운을 남기며 스크린의 마지막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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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창고2009. 4. 28. 18:17

처음 개미로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을 접했을 때, 그리고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가 듀엣으로 주제곡을 불렀다는 사실 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이집트의 왕자까지도 난 드림웍스의 애니매이션은 신뢰하지 않았다. 캐릭터의 힘이나 중간중간 관객의 허를 찌르는 코믹이 잘 어우러진 잘 짜여진 시나리오를 가졌던 디즈니의 것에 비하면 캐릭터도 이야기도 그다지 흥미롭게 생각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나의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에 대한 불신을 한 방에 그것도 대박으로 깨줬던 작품이 슈렉이었다. 캐릭터의 창조성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살짝 디즈니를 비꼬는 듯한 풍자성에 난 제대로 한 방 맞았다. 하여, 그간 충성을 다했던 디즈니의 것이 기존 작품의 틀을 깨지 못하고 반복적 답습을 하는 사이 난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을 기다리는 팬의 입장으로 돌변하게 되었다.

하여, 몬스터 대 에이리언의 제작소식을 들었을 때 난 개봉 즉시 볼 것을 스스로에게 명했으며, 지구를 침공한 에이리언으로 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몬스터가 출동한다는 시놉시스 또한 마음에 들었기에 개봉 첫 주였던 지난 주말 주저없이 티켓팅을.
헌데.... 재미가 없다고 할 영화는 확실히 아니지만, 기대가 높아서였던 탓일게다. 계속 뭔가 빵하고 터질만한 것을 기다렸으나 그런게 없다. 캐릭터의 창조성과 세밀함에 대해서는 매우 정성을 다했다는 느낌이지만, 기대했던 대박유머나 살짝 비틀어주는 패러디적 위트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3D로 봤다면...? 하는 하릴없는 가정을 자꾸 하게 된다.

어쩌면 드림웍스가 눈높이를 더 아이들에게 맞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의 짜임새보다는 어쩐지 캐릭터 사업을 염두에 둔 캐릭터의 짜임새에 더 신경을 쓰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폄하하자는 의도는 아니다. 충분히 흥행성을 장착한 유쾌한 영화임에 분명하다. 다만 개인적인 오판일지는 모르겠으나 권선징악의 단선화된 식상한 이미지에 갇혀버린 디즈니와의 차별성을 무기로 성장해온 드림웍스가 이번 작품에서 어딘지 디즈니와의 동질성을 획득한 것 처럼 느껴진 것에 대한 아쉬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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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창고2009. 4. 12. 00:06

근래 들어서는 이런 류의 헐리웃 블록버스터에는 흥미를 상실한게 분명하다. 미국 개봉 첫 주, 70만불이 넘는 오프닝 성적을 기록하며 초대박 흥행을 예고했다는 소식에도 이 영화에 대한 호기심은 그다지 미동하지 않았다.

헌데, 동행을 제안한 후배의 연락과 분노의 질주와 트리플 엑스를 거쳐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오마쥬와도 같은 패시파이어에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흥행질주를 거듭했던 빈 디젤이 바빌론 A.D.같은 말아먹은 영화 출연 후 기세를 못 피다 몇 년만에 가뿐히 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여 미동되지 않는 호기심에 양해를 구하였다.

예상했듯 영화적 구성이나 스토리는 단선적이며 허점이 보이기까지 하지만, 관객들이 기대할 속도감으로 상영시간을 모두 채워주고있다. 특히 자동차에 오타쿠적인 감성을 지닌 사람에게 이 영화는 트랜스포머 못지 않은 박진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내겐 역시 허술한 느낌. 조금은 더 길게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던 미쉘 로드리게즈의 등장 이후로는 아우토반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옮겨 달렸다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빈 디젤이 여성과 함께 있으면 나오곤 했던 배경음악에서는 난 왠지 멜로가 아닌 에로의 냄새가 -_-a

그래도 빈 디젤의 오랜만의 흥행소식은 반가운 것임에 분명하고, 이 영화는 복잡한 생각없이 속도전을 즐기고 싶은 관객의 욕구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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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창고2009. 4. 8. 00:04

그녀는 성실했을 뿐이다. 아우슈비츠에서 감시관으로 일했을 때마저.
그녀는 자신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자신의 자존심이 무너지지 않을 범위내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자기방어가  다른 사람의 형벌까지 뒤집어쓰는 것이었더라도.
그리고 그녀는 솔직했을 뿐이다. 그녀는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숨겼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순수했다. 소년은 그녀가 나치의 전범이 된 것이 안타깝고 그녀에 대한 사랑과 사회적으로 용서받기 어려운 그녀의 죄 사이에 갈등을 했을지언정, 그녀의 소년에 대한 마음은 사랑이었을 뿐이다. 그녀는 소년과 그녀와의 소통에 사랑이외의 이질적인 감정은 개입되기를 바라지 않았으며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출소전 소년과의 만남이후 그녀가 선택한 결정은 변질된 사랑에 대한 애닯은 순애보였는지도 모른다.

소년은 순수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기 전까지 소년은 그녀와 완벽한 합치를 보여줬다. 그러나, 소년이 그녀의 세계(그녀는 버스 차장으로 일할 때도, 그리고 전범으로 교도소에 있을 때도 그녀가 기거하는 방이 세상의 전부이지 않았을까?)에서 벗어난 공간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소년이 그녀와 같이 순수하게 남아 있을 수 있으리라는 것은 거짓된 믿음일 것이다. 소년은 순수할 수 없었기에 평생 그녀의 그림자에 갇혀 갈등을 하면서도 정작 그녀에게 손을 뻗지는 못한다.

무지하였기에 더 수월할 수 있었겠지만, 그녀는 단순했다. 하여 그녀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단선적으로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소년은 사랑이라는 감정에만 집중하기에는 너무 복잡했다. 따라서 그녀의 마지막 선택은 그녀와 소년사이에 더이상 이질감이 없는 감성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음을 알고 결정된 것이라 생각되기에, 그것이 내게는 안타깝지도 갑작스럽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의 마지막 선택은 그녀와 소년의 순수했던 추억을 지키려는 또 하나의 자기방어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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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창고2009. 3. 26. 15:08

DVD를 살 때도 이 영화에 대해 내가 사전에 확보했던 정보는 그다지 없었다. 그저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라는 것 밖에는. 그러나, 원작에 대한 호평과 클래식이 소재가 된 만화라는 점은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었기에 주저없이 주문을 하였다.

원작을 보지 못 했기에 영화와 원작과의 싱크로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가늠할 길은 없으니 원작 대비 호불호는 내가 감히 언급할 사항은 아니고, 영화 자체로만 본다면 감성을 깨우기에 충분한 영화이다. 어찌보면 아이들의 눈 높이에 맞추어, 겸허한 모짜르트와 천재를 질투하지만 시기어린 음해는 하지 않는 순수한 살리에르의 만남이라고 할까?

유명한 피아니스트를 아버지로 둔, 그리하여 어렸을 때 부터 정통 피아노 교육을 받은 슈헤이는 잠시 전학간 학교에서 카이라는 소년을 만나게 된다. 카이는 잡초처럼 자란 소년이지만 피아노에 대한 천재적인 감성과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그가 피아노를 치는 이유는 즐거워서이다. 그런 카이의 천부적 재능에서 슈헤이는 가슴이 울리는 감동과 동시에 묘한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어린아이답게 그 질투는 건강한 경쟁심으로 상변화되어 콩쿨에서 경합을 하게 되는데...

피아노를 매개로 두 아이의 건강한 경쟁을 풀어가는 이 영화는 롤러코스터식의 감정 기복은 없다. 그 흐름이 지극히 평이하며 일상적이기에 단선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위험을 어린아이라면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법한 판타지적 요소를 중간중간에 삽입함으로써 피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내 귀가 정밀하지 못하고 노트북을 TV에 연결해서 보는 조악한 감상환경 탓이겠지만, 카이의 연주가 폐부를 찌를만큼 감동적인 울림으로 다가와야 할 장면에서 난 정작 별다른 영혼의 미동이 없었다는 것.  그러나, 때묻은 일상에서 벗어나 유년기의 정갈한 감성을 되살리기에는 전혀 아쉬움이 없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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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창고2009. 3. 9. 19:09

이 글을 쓰는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꽤 오래 전에 본 영화이다. 시간적 간극이 있음에도 이 영화를 언급하게 된 것은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것이 반가운 탓이다. 사실, 아카데미 시상식 발표가 있은 직후 쓰려고 했지만 이런저런 비겁한 변명들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지금까지 왔고, 그럼에도 굳이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다짐만 하고 수행은 하지 못할 나의 지리멸렬함을 구제하기 위함이다.

누군들 그렇겠지만, 난 죽음에 약하다.
그것은 할머니의 죽음에 기인한다는 것이 스스로의 분석이다. 그렇다고 할머니 생전에 내가 아주 애틋한 관계를 형성했던 것은 아니었다. 되려 할머니와의 관계는 서울과 부산이라는 먼 거리를 구실로 명절에나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밋밋한 관계였었다. 게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초등학교시절 이미 여든을 넘기신 고령이신지라 원활한 의사소통에는 약간의 제약이 있었다.
그러했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전갈을 군 복부 시절 받았다. 이미 입대 초기에 외할머니의 부고를 경험했던지라 급하게 휴가를 상신하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에서도, 그리고 조문을 오신 친지분들을 모셨던 장례식장에서도 큰 동요없이 담담하게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때까진 말이다.

헌데, 할머니께서는 화장을 하시었다. 몇 분의 반대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나, 아버지께서 어린 시절 이미 돌아가셨던 할아버지께서 화장을 하셨기에 같이 화장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었나 보다.
처음 봤던 화장터의 풍경. 난 그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순진함이었다. 죽음을 다루는 곳. 난 그런 곳은 고결하고 경견할 것이라는 막연한 그림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봤던 그 곳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 차가운 공장. 이것이 내가 화장터를 처음 본 순간 가졌던 느낌이었다. 그리고 고인과 좀 더 함께 하고 싶은 유족들에게 돈을 받고서야 화구에 관을 넣는 것을 잠시 지체해주던 계산된 손길과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육신. 이런 것들이 융합되어 난 까닭모를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왠지 죽음을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잃게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이런 내게 염습과 납관을 다뤘다는 굿'바이는 어딘지 모르게 나를 달래줄 수 있을 것 같은 영화라는 생각이었다.
주인공인 다이고와 가까웠던 영화 마지막의 두 분의 죽음을 제외하면, 이 영화 속에서의 죽음은 무겁게 가라앉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되려 어떤 부분에서는 유쾌하기 까지 하다. 그러나, 교향악단 단원에서 납관전문회사의 직원으로 엉겁결에 밥벌이를 바꾼 다이고와 그 사장이 亡者를 대하는 방식에는 늘 亡者에 대한 존중이 깔려 있다. 그렇기에 그들이 다루는 죽음은 여유롭게 보이면서도 결코 경박스럽지 않다. 조금은 궁금했던 영화제목 굿'바이에서의 한 박자 쉬어가는 듯한 '의 존재는 이와 같은 것들로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면에서 난 이 영화의 우리말 제목이 꽤 마음에 든다.-
그리고 교향악단의 첼로 연주자에서 염습을 하게 되는 다이고의 직업적 변화가 처음에는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만, 음악이 살아 있는 자의 영혼을 달래주듯, 염습이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그 이질감은 융해되고 만다. 다이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본인 스스로도 처음에는 꺼렸던 그의 일을 결국에는 스스로 존중하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굿'바이. 이 영화는 내게 죽음 앞에 한 박자 쉴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주는 동시에, -최소한 내겐-산 자의 영혼도 달래주는 영혼 치유적 영화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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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창고/Player2009. 3. 6. 18:00
얼마전 쥬얼리 브랜드 홍보 차 오랜만에 소피 마르소가 우리나라를 찾았을 때, 한동안 그녀를 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과거 You call it love에서의 초절정 청순미모만을 생각했던지 적지 않은 실망을 한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만,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그녀의 노화를 접해왔던 저로서는 되려 몇 년전 볼살이 꽤 빠졌던 때에 비해선 지금이 더 보기 좋아져 역.시.소.피.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66년생인 소피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아름다운 노화라는 생각...팬심입니다.

매년 다작을 하는 배우는 아니었는데, 올해는 벌써 두 편의 영화를 개봉시켰습니다.
1999년 헐리웃에서 007시리즈인 The World Is Not Enough 이후 자국에서 영화를 주로 찍으며, 그간 우리나라에서도 살짝 개봉했던 안쏘니 짐머를 비롯한 영화 등을 계속 내 놓았으나 (프랑스도 역시 헐리웃의 지배하에 있기는 합니다만) 썩 신통한 흥행성적을 거두었다고 하기엔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올해 한달 정도 간격으로 개봉된 두 편의 영화 성적은 어떨까요?


짐작하시겠지만, 붉은 색으로 하이라이팅 된 두 편의 영화가 소피 마르소가 주연한 영화입니다.
과거 5년간 연단위 프랑스 박스오피스 성적을 보면 1,400만불 정도면 너끈히 30위권 안에 들 수 있으며, 2천만불은 15위권 내에 들어올 수 있는 성적입니다. 물론 아직 2009년 이라고 해봐야 1/4분기도 끝나지 않았으니 이후에 개봉될 영화 성적에 따라 어찌 될지는 지켜봐야 하긴 합니다.
어찌됐건, LOL 같은 경우는 현 추세대로라면 3천만불의 흥행성적은 무난히 달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봉 4주간 순위가 2->1->2->2 입니다, 매우 순항중입니다.) 이 정도면 정말 영화 제목처럼 lol~(laugh out loud)이로군요. ^^

이제 슬슬 두 편의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가 궁금해지지 않으십니까? 예고편을 한 번 보시지요.

De l'autre cote du lit의 예고편 입니다.
우리말로 굳이 해석을 하라 하시면... '침대의 다른쪽 뭐시기...?' 저 불어 못합니다; 예고편을 보니, 한 부부가 역할을 바꿔 생활하며 서로를 이해해 가는 그런 내용이지 않을까 싶군요.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인 Dany Boon이라는 분이 현재 프랑스에서는 가장 잘 나가는 배우라고 하는 군요.



이번엔, LOL입니다. 미국에서 잘 쓰는 통신용어이니 굳이 우리말 해석은 필요없으실 듯 하고, 어찌 보면 라붐을 연상하게 하는 내용일 수도 있겠다 싶군요. 어쩌면 프랑스에서 '라붐의 10대 소녀가 10대 소녀의 어머니가 되어 돌아오다'라는 식의 홍보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조금은 유치한 짐작도 해봅니다. ^^;



위의 두 영화, 특히 LOL이 왠지 라붐을 자꾸 연상하게 되어 꽤 궁금합니다만,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일은 없을 듯 한 것이 아쉽군요. 헌데, 이 두 편의영화가 모두 코메디입니다. 그러다 보니 소피는 코믹이나 청순형에서 그 위상이 강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군요. 그간 프랑스에서 개봉했던 영화에서 팜므파탈류의 연기까지 펼쳤으나 흥행이니 비평 모두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것을 생각해보면 말이죠. (물론, 위의 두 영화의 IMDB 평점이 아주 좋지는 않습니다. 침대의 다른쪽 뭐시기...는 4점대 더군요.)

어찌됐건, 간만에 소피의 영화가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 같아 기분이 좋군요.
이리 되니 모니카 벨루치와 같이 찍은 Ne te retourne pas라는 영화가 더 궁금해집니다. 한 여성작가가 자신의 신체가 점점 다른 사람으로 변해간다는 느낌을 갖는다는... 그런 시놉시스를 가지고 있던데, 소피 마르소가 혹은 모니카 벨루치가 상대역으로 변해가는 그런 내용일까요? 사이코드라마 같은 내용이지 않을까 하는데, 이 영화는 두 여배우의 이름 값도 있고하니 우리나라에서도 수입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를 해봅니다. 프랑스에서는 금년 5월 경에 개봉할 예정이더군요.

캐서린 햅번과 같은 대배우와 비교하기에는 솔직히 무리가 따릅니다만, 소피도 주름이 잘잘해서도 끝까지 스크린을 지킬 수 있는 연기자가 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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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창고2008. 9. 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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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영화제목에 끌려 보게 된 영화. 기대대로 이 영화는 매우 솔직하다. 그것은 이 영화가 스턴트맨액션배우을 꿈꾸었던 액션스쿨 8기생들의 이야기를 다큐형식으로 찍은 영화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들은 아무런 가감없이 자신을 보여주고 있기에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아무 생각이 없는 듯 하며, 그리고 진지한. 그렇기에 때로는 중심을 잃고 위태로워 보이기까지하는 바로 그들 자신이었다. 그리고 영화는 주인공을 위해 주인공이기를 포기한 그들의 생활을 애써 측은하게 그리려 하지도 않는다. 하여, 이 영화는 솔직한 것이다.

<놈.놈.놈.>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작영화에서부터 정종철이 출연하는 이름 모를 영화까지 그들이 소모되지 않은 영화는 드물다. 그러나, 그들은 늘 주인공 뒤의 그림자로 설 뿐 화려함은 그들의 몫이 아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그들은 늘 소모품 취급을 받는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감독이(그도 액션스쿨 출신이라고 한다)의 "우리는 액션배우다"라는 외침은 어쩐지 모르게 슬픈 어감으로 다가온다. 분명 그들은 당당하고 쾌활하게 "우리는 액션배우다"라고 말할지언정 뭔지 모를 짠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어쩔 수 없는 현실과 바람의 괴리때문인 것인가?

.......하긴, 그렇다해도 뭐 어떠랴. 결국 우리는 모두 희망과 현실의 간극에 서 있지 않은가. 그 간극의 불안 위에서 우리는 웃고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가끔 술에 기대어 스스로를 위로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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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창고2007. 12. 18.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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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h Piaf. 그녀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게 중학교 때였나보다.
이것저것 모아대던 수집병이 LP판에 이르렀을 때 장르를 무시하고 고전이라 부를 법한 작품들을 무작정 모으고 싶은 마음을 가졌었다. 지금처럼 네이버가 창궐한 시대라면야 오천만의 지식인에 물어봤으련만, 당시로선 부모님이나 형, 혹은 친구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그 때 모친께서 '들어볼래?' 했던 가수가 바로 에디뜨 피아프였다.

샹송. 질풍노도의 초입에 접하기엔 어쩐지 낯설고 어울리지 않을 법할 수 있었으련만, 에디뜨 피아프 이전에 이웃집 아주머니로 부터 선물?받은 앙리꼬 마샤스 덕에 왠지 샹송이라는 음악이 궁금했던 시기였고, 그렇다면 에디뜨 피아프는 놓쳐서는 안되는 가수라는 것이었다.
하여 구하게 된, 음반의 먼지 섞인 소리사이의 에디뜨의 음성은 힘차게 울렸으나 어딘지 모르는 쓸쓸함을 담고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전통 트로트가 가지고 있는 恨의 정서 같은 것이랄까? 그러한 정서에 끌려 한동안 친구들한테 특이한 놈으로 찍혀가며 듣고 다녔던 적이 있었다. 꽤 오랫동안.

헌데, 바로 그 에디뜨 피아프의 전기영화 '라비앙로즈' -친구와 이 영화의 우리말 제목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정말 차라리 장미빛인생이라고 해줬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가 얼마전에 개봉을 했다.
우선 에디뜨 역을 맡은 마리온 꼬띠아르의 가녀리며 꾸부정한 자세까지 제대로 재생해 낸 에디뜨의 복제는 훌륭한 것이었지만, 영화적 전개는 좀 산만하고 그녀의 삶의 깊이를 너무 얕게 파낸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프랑스 현지에서야 자국의 전설적인 가수이다 보니 얘기의 축약과 시간의 자유로운 전개가 되려 그녀의 음악을 감상하기에는 적합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에디뜨 피아프가 생소한 우리나라 관객이라면 그다지 권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굴곡많은 삶과 음악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이 영화는 잠시나마 에디뜨 피아프를 추억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제한된 상영시간 덕에 그녀의 수 많은 음악 중 일부만 감상 할 수 있는 것은 아쉬움이다. 라이언 일병구하기에 나왔던 Tu es partout은 선곡되지 않을 것임을 능히 예상했지만, L'accordeoniste나 Les Mots D'amour 쯤은 나와줄 것으로 기대했었드랬다. 하여 아쉬움에, 영화에 나오지 않은 곡을 한 곡 올려보려 했으나 후회없는 내 삶을 위해...

♪ Edith Piaf...Non Je Ne Regrette Rien(후회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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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창고2007. 11. 2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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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단편을 엮은 옴니버스 영화. 세가지 에피소드 모두 자살소동을 다루고 있지만, 결코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여 어쩌면 이 영화에서는 삶의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박수영 감독의 <암흑속의 세 사람>에서 도서관에서 늦잠을 자 시험시간을 놓친 한 여고생(한여름)의 자살이후 학교에서는 양호선생(김가연)과 학생주임(박휘순), 그리고 학교에 불만을 가득 품은 학생(타블로)의 세사람간에 일종의 게임(?)이 시작되게 된다. 이 게임은 서로 죽고 죽이려는 게임이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말리고 죽어서는 안된다고 설득하는 사람은 여고생이며, 이 여고생에게 삶의 의지를 부여해준 것은 바로 이 세사람이었다. 기발한 상상이 유쾌했지만, 좀 더 개연적인 짜임새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던 에피소드였다.

조창호 감독의 두 번째 에피소드 <날아라 닭>. 개인적으로 뭔가 있을 법한 이미지에 비해 매우 신임하지 못하는 배우, 김남진이 잠언적으로 이끄는 이야기이다. 권총 세발을 준비하고 자신의 목숨을 그것에 맡기고자 하지만, 일종의 정의사회 구현(?)에 대한 의지가 발현된 탓에 그를 이입했던 닭이 최후를 맞게 되는데...
근래 김남진의 행보를 보면 확실히 배우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느껴지지만, 어쩌면 이 영화의 백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했던 김남진과 닭과의 '꼬꼬댁~ 꼭꼬'로 이어지는 대화장면에서 역시 김남진은 힘이 달린다는 느낌이다.

김성호 감독의 <해피버스데이>에서는 사랑과 관심에 목을 맨 할아버지 임춘봉(정재진)의 무관심으로 점철되었다고 생각한 생일. 그가 우연히 한 젊은이(강인형)를 만나면서 하루에 겪게되는 파란만장한 모험기이다. 임춘봉 할아버지의 귀여움이 돋보였던 에피소드, 허나 그 덕에 젊은이가 노출된 시간에 비하면 영화를 장식하는 소도구쯤으로 그 역할이 축소된 느낌이었다.

거대 영화시스템의 스토리라인과 패턴에 지쳐가는 내겐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였고, 어렵고 재미없기만 하다는 독립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거둬줄 매개가 될 수 있을 영화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MBC 드라마넷이 안정적인 제작환경을 지원함으로써 향후 케이블 영화의 긍정적인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 까닭에 내년 초에는 케이블에서 방영해 줄 예정이라고 하니, 돈 들여 독립영화를 보기 꺼려지는 관객이라면 케이블을 통해서라도 다른 시각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그들을 지원해 주시길.
Posted by yu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