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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09 굿'바이
영화창고2009. 3. 9. 19:09

이 글을 쓰는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꽤 오래 전에 본 영화이다. 시간적 간극이 있음에도 이 영화를 언급하게 된 것은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것이 반가운 탓이다. 사실, 아카데미 시상식 발표가 있은 직후 쓰려고 했지만 이런저런 비겁한 변명들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지금까지 왔고, 그럼에도 굳이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다짐만 하고 수행은 하지 못할 나의 지리멸렬함을 구제하기 위함이다.

누군들 그렇겠지만, 난 죽음에 약하다.
그것은 할머니의 죽음에 기인한다는 것이 스스로의 분석이다. 그렇다고 할머니 생전에 내가 아주 애틋한 관계를 형성했던 것은 아니었다. 되려 할머니와의 관계는 서울과 부산이라는 먼 거리를 구실로 명절에나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밋밋한 관계였었다. 게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초등학교시절 이미 여든을 넘기신 고령이신지라 원활한 의사소통에는 약간의 제약이 있었다.
그러했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전갈을 군 복부 시절 받았다. 이미 입대 초기에 외할머니의 부고를 경험했던지라 급하게 휴가를 상신하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에서도, 그리고 조문을 오신 친지분들을 모셨던 장례식장에서도 큰 동요없이 담담하게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때까진 말이다.

헌데, 할머니께서는 화장을 하시었다. 몇 분의 반대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나, 아버지께서 어린 시절 이미 돌아가셨던 할아버지께서 화장을 하셨기에 같이 화장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었나 보다.
처음 봤던 화장터의 풍경. 난 그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순진함이었다. 죽음을 다루는 곳. 난 그런 곳은 고결하고 경견할 것이라는 막연한 그림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봤던 그 곳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 차가운 공장. 이것이 내가 화장터를 처음 본 순간 가졌던 느낌이었다. 그리고 고인과 좀 더 함께 하고 싶은 유족들에게 돈을 받고서야 화구에 관을 넣는 것을 잠시 지체해주던 계산된 손길과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육신. 이런 것들이 융합되어 난 까닭모를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왠지 죽음을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잃게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이런 내게 염습과 납관을 다뤘다는 굿'바이는 어딘지 모르게 나를 달래줄 수 있을 것 같은 영화라는 생각이었다.
주인공인 다이고와 가까웠던 영화 마지막의 두 분의 죽음을 제외하면, 이 영화 속에서의 죽음은 무겁게 가라앉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되려 어떤 부분에서는 유쾌하기 까지 하다. 그러나, 교향악단 단원에서 납관전문회사의 직원으로 엉겁결에 밥벌이를 바꾼 다이고와 그 사장이 亡者를 대하는 방식에는 늘 亡者에 대한 존중이 깔려 있다. 그렇기에 그들이 다루는 죽음은 여유롭게 보이면서도 결코 경박스럽지 않다. 조금은 궁금했던 영화제목 굿'바이에서의 한 박자 쉬어가는 듯한 '의 존재는 이와 같은 것들로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면에서 난 이 영화의 우리말 제목이 꽤 마음에 든다.-
그리고 교향악단의 첼로 연주자에서 염습을 하게 되는 다이고의 직업적 변화가 처음에는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만, 음악이 살아 있는 자의 영혼을 달래주듯, 염습이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그 이질감은 융해되고 만다. 다이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본인 스스로도 처음에는 꺼렸던 그의 일을 결국에는 스스로 존중하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굿'바이. 이 영화는 내게 죽음 앞에 한 박자 쉴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주는 동시에, -최소한 내겐-산 자의 영혼도 달래주는 영혼 치유적 영화였던 것이다.

Posted by yup!e